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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사도행전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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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및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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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속(續) 사도행전 교회
성경> 행28:23-31
찬송> 208, 252장


●속(續) 사도행전 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 정면 벽에 다른 행사가 없을 때 항상 걸어두는 현수막이 있습니다. 그 현수막에는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한 구절이 적혀 있습니다. 31절 말씀입니다.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

그리고 그 성구 위에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속(續) 사도행전 교회, 장산교회’

제가 이 성구를 적어 교회당 전면에 걸어 둔 이유에 대해 이전에 권찰회 시간에 잠간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지역의 현실을 생각하고 이 현수막을 하나의 도전장처럼 생각하고 건 것입니다.
교회 앞 거리에 절표시를 하고 대나무를 거는 집들이 하나 둘 늘어가고 있습니다. 반여 3동 방향으로 가는 안 쪽 길에 새롭게 두 집이 더 개업을 했다고 합니다.
이 무당이나 점술인들이 왜 이 곳으로 계속 모이는지 알 수 없습니다. 다른 데서는 장사가 잘 안되고 이 동네는 잘 된다는 소문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이 동네에 영험이 있는 귀신들이 많아 굿도 잘되고 점괘도 잘 풀려서 그런 건지…
여하튼 이 동네만큼은 잘 성업하는 것 같습니다.

교회가 이렇게 버젓이 서 있는데 왠 무당들이, 왠 점쟁이들이 이렇게 들어서는 건지?
이것은 교회가 교회의 역할을 잘못하고 있는데서 오는 결과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어떤 일이 생기면 ‘교회에 가서 하나님을 찾아야지’하는 생각보다는 ‘빨리 무당을 찾아 굿을 해야지’하고 생각하거나 ‘점이라도 한 번 봐야겠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제가 도전장을 냈다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입니다.
그러면서 교회 역사 가운데 복음의 역사가 가장 강력하게 일어났던 복음의 초창기 사도행전 시대를 생각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보여주었던 그 복음의 역사들. 병자가 낫고, 점쟁이가 회개하고, 또 어떤 도시에서는 도시 전체가 복음을 듣기 위해 회당으로 모이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행전 시대는 그 시대로 끝이 난 것입니까? 우리는 그 시대를 그 옛날 성경의 한 역사에 있었던 신화처럼 생각하고 말아야만 합니까?

저는 우리 모두가 사도행전의 마지막 성구로 이 세대와 이 지역을 향해 거룩한 영적 도전장을 던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다시 행28:31을 봅시다.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

이 성구는 사도행전 마지막장 마지막 절이면서도 느낌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무엇인가 이야기가 계속되어질 것 같은데 중단한 느낌을 받지 않습니까? 그래서 어떤 신학자가 이 사도행전의 끝마침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오픈 엔딩'(open ending)
끝은 끝인데 열린 끝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성경 구절을 보며 ‘속(續) 사도행전’이란 용어를 생각해 내었습니다. 아직 사도행전의 역사가 끝나지 않았다면 우리 교회는 이 사도행전의 시대를 계속 이어가는 교회가 되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사이 시중에 나온 책들을 보니 ‘신(新) 사도행전’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새 사도행전 시대를 여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사도들이 활동했던 그 시대의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오늘 이 시대에 계속 이어가는 속 사도행전을 기록하는 성도와 교회가 되어야하는 것입니다.

이제 따라서 한 번 외칩시다. - “속(續) 사도행전 교회, 장산교회”

그러면 우리 장산교회가 속 사도행전 교회가 되려면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까?
행28:31에서 그 교훈을 찾아보겠습니다.

1.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교회입니다.
성경은 사도행전을 마치고 속 사도행전을 여는 시점에서 바울의 행적 중 담대히 복음을 전파한 사실을 기록해 놓았습니다.
우리 교회가 속 사도행전 교회가 되기를 소원한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이 복음 전파의 사명을 효과적으로 수행해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지금 죄수의 신분으로 연금 상태에 있습니다. 이 연금 상태는 사람을 만나는 데는 제약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많은 사람을 만나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그의 처지가 찾아가서 복음을 전할 수는 없었기에 그는 많은 사람을 초청하였습니다. 그는 조금 더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 성도들의 도움으로 셋집을 얻었습니다. 자신이 얻는 셋집을 연금 장소로 사용살 수 있는 것이 그 당시의 법이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바울이 어떻게 하든지 복음을 전하려는 일념에 가득 차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는 자유인이었을 때는 곳곳에 사람을 찾아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지금은 감옥에 연금된 상태가 되니 사람들을 초청하여 복음을 전합니다. 그는 정말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성경 본문은 그가 ‘담대히’ 복음을 전파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죄수의 신분입니다. 그러나 그는 왕과도 같습니다. 여기에 사용된 ‘전파하다’라는 말은 선포하다는 의미입니다. 왕이 명을 내릴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바울은 지금 세상의 왕인 로마 황제에게 재판을 요구해 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지금 그가 왕입니다. 그는 지금 그의 셋방을 궁궐처럼 사용하면서 그에게 찾아오는 사람에게 신적인 권위를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교회가 복음을 전하는 데에 조금 더 담대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복음을 전하는 데 조금 더 담대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죄수가 아니라 왕의 사명을 전해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지금 속 사도행전 교회를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은 사도들의 행적을 기록한 책이라는 말입니다. 사도들이 누구입니까? 그 말뜻이 ‘사명을 띠고 보냄을 받을 자’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사도행전의 역사를 이으려면 이 사도의 임무에서부터 철저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복음의 사명을 주어 세상을 향해 파송한 자들입니다. 우리는 세상 왕의 명령보다 더욱 명확하고 정확하게 그리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바울처럼 나가서도 전하고 초청해서도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 가운데는 바울처럼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는 분들도 나오시기 바랍니다. 저는 우리교회에서도 전도왕이 나오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서도 전국 교회의 초청을 받아 간증하는 분들이 있기를 바랍니다. 전도왕은 일정한 기간(전도행사 기간)에 전도하다가 그만 두는 사람이 아닙니다. 항상 전도할 마음을 갖고 전도하는 사람입니다. 이미 우리 교회를 다녀갔던 박영규 집사님처럼 직장도 복음을 위해서 택하고 보직도 복음 전하기 좋은 보직을 바라고.
또 바울이 갇혀 있어 자유롭지 못했을 때 초청하여 복음을 전한 것처럼 교회로 초청해서 복음을 전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바울처럼 말을 잘 못하는데 하면서 주저합니다. 바울이 말로 전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복음의 능력으로 전했습니다. 오히려 말 잘하는 것이 복음의 장애가 될 수도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 예수쟁이들 말 잘하는 것 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복음에 대한 우리의 열정과 진실함을 알고 싶어 합니다. 여러분이 말을 잘 할 수 없으면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그들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주십시오. 여러분이 기도하다 보면 하나님이 그런 마음을 주십니다.

어떤 사람은 이것 하나로 그 교회 전도왕이 되었습니다. 말은 잘 못하고 그래서 자신은 없고, 하나님께 이 문제로 기도하니 하나님이 그에게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영혼을 위해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간증집회 중에 기도는 투자와 기도만 있어도 된다는 말을 들었는데 바로 그렇습니다.
이 사람이 전도하기 위해 먼저 아는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하는데 만나기만하면 말보다 눈물이 먼저 나오더랍니다. 사람만나 말도 않고 눈물만 뚝뚝 흘려보세요. 그것도 참 난감한 것 아니겠습니까? 사람들이 왜 그렇게 우느냐고 물으면 겨우 하는 말이 “교회 가야 되는데… 교회 가야 되는데…”입니다. 사람들이 우는 사람 하도 딱해서도 교회가 나가 주더랍니다. 그렇게 해서 그가 전도왕이 되었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주위를 보십시오. 이 동네 사람들이 불쌍하지 않습니까? 하나 둘 대나무 걸린 집이 늘어갈 때마다 이 사람들의 삶이 더욱 비참해질 것을 느끼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은 불쌍하지는 않는데 답답한 마음은 있답니다. 그러면 그 답답한 마음으로 기도하세요. 그러면 그 사람과 영혼이 불쌍히 여겨질 것입니다.

예수님 없는 인생의 삶이 잘 살면 얼마나 잘 살 수 있겠습니까? 고작 이들이 뻐기는 것은 돈이 좀 있는 것인데, 결국 행복이란 것의 의미도 모르고 돈과 함께 망할 자들이 아닙니까!

2. 꾸준히 양육해야합니다.
31절 말씀에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을 가르치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전파한 것만 아니라 가르치는 일도 했습니다. 여기에 말한 ‘가르치다’라는 말은 훈련한다는 의미입니다. 즉 양육한 것을 말합니다.
그는 복음에 대해, 하나님 나라의 소망에 대해 알지 못한 자들에게는 복음을 선포했을 것이고, 또 이미 복음을 받아들여 자신을 찾아오는 자들에 대해서는 양육했던 것입니다.

여기에 교회의 가장 주된 두 가지 사명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전도와 양육입니다. 교회의 성장 역시 이 두 가지에 달려 있습니다. 얼마나 효과적으로 이 두 가지 일을 잘 하느냐에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전도하는 일만큼 양육하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합니다. 임산부가 아이를 낳은 뒤에 그 아이의 양육에 무관심하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 교회도 이제 새가족들의 양육체계를 더욱 견고히 할 것입니다. 필요한 보완조치들을 할 작정입니다. 새가족들을 위한 더욱 세밀한 영적 보살핌을 위해 교회의 조직들을 개편할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인력도 필요하고 재정적인 지원도 필요할 것입니다.

더욱 필요한 것은 우리 모든 장산교회 가족들의 관심입니다. 그리고 새가족들에 대한 배려입니다. 그리고 또한 기존 성도 여러분들이 걱정 없을 정도로 빨리 자라 주는 것입니다. 아이들을 키우다보면 가장 조심해야 되는 사람이 바로 위 아이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빼앗기니 부모에게 투정을 부리고 동생인 갓난아기에게 해를 입히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기존 성도들의 영적 성숙도 참으로 중요합니다.

3. 하나님의 복음의 비전을 보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여기에까지 오게 된 것은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복음의 비전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이 로마까지 온 것은 이전부터 가지고 있던 그의 소원이었습니다. 어떤 소원이었습니까? 그는 로마에 오기 이전에 이미 로마의 성도들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롬1:13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롬1:15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그래서 그는 풀려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로마에서 복음을 전할 목적으로 죄수의 몸으로 여기에까지 온 것입니다. 그가 존재하는 목적도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그는 살아도 복음을 위하여 죽어도 복음을 위하여 행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바울이 가진 비전에 앞서서 하나님의 비전이 있었던 것을 알아야합니다.
예수님은 행1:8에 이미 복음 전파의 계획을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복음은 이미 유대, 사라미아를 거쳐 이방지역 곳곳에 전파되었습니다. 복음은 결국 땅 끝까지 이르러야 하는데 그 당시 땅 끝까지 복음이 전파되기 위해 우선적으로 복음이 들어가야 할 곳이 바로 로마였습니다. 우리가 아는 말 중 하나에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복음이 로마에 들어가야 로마를 통하여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해지는 것입니다.
복음은 로마에서 그 다음에 어디로 갑니까? 게르만 민족들에게로 옮겨 갑니다. 이 게르만 민족들은 본래 야만족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였고, 그들의 역사와 문화에 찬란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복음은 게르만 민족에게서 다음은 어디로 갑니까? 앵글로 색슨족에게로 갔습니다. 이들은 게르만 민족보다 더 야만적인 해적들입니다. 이 해적들이 복음을 받자 이들의 나라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나라가 바로 오늘 날 신사의 나라 ‘영국’ 아닙니까!
다시 이 복음은 미국으로 건너왔습니다. 얼마나 많은 선교사들이 북미 대륙에서 세계를 향해 복음을 들고 나아갔습니까? 이 복음은 어디에까지 왔습니까? 아시아의 이 작은 반도 한국에게까지도 복음이 찾아왔습니다.

여러분이 이제 하나님의 역사에 눈을 뜨셔야 합니다. 결국 이 복음의 역사는 하나님의 작정대로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이 복음은 땅 끝까지 이르게 됩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한 복음이 땅 끝까지 이르려면 어디까지 가야합니까? 지구가 둥그니 결국 땅 끝은 다시 예루살렘입니다.
그런데 지금 복음이 계속 돌다가 동남아시아에서 멈추었습니다. 어디에 부딪힌 것입니까? 회교권 나라에서 멈춰있는 것입니다. 동남아도 회교권 나라가 많이 있습니다. 이 지역을 정복하면 이제 곧 예수살렘에 닫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이 회교권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원동연 박사가 몽골에 국제대학을 세운 이유가 바로 이 선교적 세계관에서였다.)

우리는 세계의 복음화를 위해 기도하고 힘을 합해야 하겠지만,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 이 지역의 선교사는 우리 자신인 것입니다.

●금번 집회와 우리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
저는 금번 이종근장로 초청 간증집회와 이어지는 특별새벽기도회를 통하여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한 우리 성도들이 있을 것인데 이후로는 하나님이 여러분의 형편을 열어주셔서 은혜의 자리에 항상 함께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금번 집회를 통해 제가 깨달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 교회를 사용하고 싶어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간절한 소원이 전도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소망이 없이 살아가는 이 지역이 그리스도의 빛으로 행복을 찾기 원하십니다. 소망 없는 자들이 의지할 것이라곤 무당이고 점쟁이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교회를 통하여 이 지역에 새 소망을 심기 원하십니다. 우리 교회가 이 지역사회의 ‘행복채널’이 되길 소원하십니다.

우리는 금번 집회 때 하나님의 크 은혜와 역사를 경험하고, 이어 계속되는 새벽기도회로 그 받은 은혜를 가지고 기도하며 하나님께로 나아갔습니다. 하나님의 간절한 소원인 전도를 우리의 가슴에 품고 먼저 우리 자신이 영적으로 온전히 회복되기를 원했습니다. 이제 성령의 충만함으로 이 복음을 전할 일만 남았습니다.

모두가 한 가족이니 이 말씀을 드립니다. 금번 이종근 장로 초청 집회 시에 전도헌금을 작정하였고 이미 이 헌금을 드린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는 이 뜻하지 않았던 이 헌금을 작정할 때에 정말 부담이 많았습니다. 이미 작년 이맘때 장산비전헌금을 작정하여 많은 성도들이 하고 있는데 강사는 그 사실을 알리 없습니다. 또 작정을 하자고 하는데 목회자로서 입이 바짝 타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장산비전헌금 때보다 더 많은 헌금이 작정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전도헌금을 작정할 때는 목회자는 적게 작정되어도 걱정, 많이 작정되어도 걱정입니다. 적게 작정이 되면 성도들이 ‘은혜를 못 받았는가보다’ 하는 생각이 들고 많이 작정이 되면 ‘앞으로 일 정말 많이 해야겠구나’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어떤 한 분이 마티즈 한 대를 전도 상으로 작정하였습니다. 어떤 큰 회사의 대형 이벤트 경품이 아닙니다. 그 의미는 우리 교회 전도 왕이 되는 사람은 더욱 많은 곳을 다니면 열심히 전도하라는 의미로 보았습니다. 또 어떤 분은 마티즈 두 배의 금액을 헌금한 분들도 있습니다. 각 티슈 1만개의 헌금을 한 분들이 몇 분 있습니다.(각 티슈 1만개는 마티즈를 두 대를 살 수 있는 금액입니다)
이런 분들뿐만 아니라 제가 명단을 보니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인 줄 알고 과부의 두 렙돈처럼 최선을 다한 참으로 눈물겨운 헌금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분명 여러분의 심령을 받으시고 복된 것으로 채우실 것입니다.
또 이미 이번 집회 중에 육신의 질병을 깨끗이 치유 받은 이야기를 두 사람에서 들었습니다.(제가 아직 듣지 못한 사람들도 있는 줄 압니다.)

●사도행전 29장을 우리의 신앙행전으로 쓰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하나님의 이 역사의 현장에서 제외되는 사람이 없기를 바랍니다. 분명 하나님이 금번에 은혜 받고 헌신하기로 작정한 사람들에게 또 증거로 나타내실 것입니다. 그들이 분명 자신들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를 간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하고 또 한편으로 두렵기까지 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게 두신 뜻입니다. 이제 우리의 책임은 더욱 커졌다는 것입니다. 복음은 돈으로만 되지 않습니다. 저는 이제까지 나타난 모든 것은 하나님이 우리 교회에 가지고 계신 기대를 표현하신 것이라고 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과 함께 이 반여동, 재송동, 그리고 부산을 복음으로 불태울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어떻게 주님께 헌신 할 것인지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 교회를 이 시대에 ‘속 사도행전 교회’로 세우셔서 사도행전 29장을 계속 쓰게 하실 것입니다. 새롭게 쓰여 질 사도행전 29장이 여러분의 신앙행전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주후2002.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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