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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해야할 밭(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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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및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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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추수해야할 밭(2)
성경> 요4:27∼38
찬송> 95, 275장


●지난 주 말씀 요약
지난주에 이어 오늘 말씀이 이어지기 때문에 지난주의 말씀을 잠깐 요약하고 시작하겠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물질의 복과 건강의 복을 원합니다. 이것은 이 세상에 발을 붙이고 사는 사람이라면 예외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해서 이 세상을 초월하여 사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건강의 복과 물질의 복, 이 두 가지 외에 더 우선적으로 추구해야할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어떤 복입니까? '영혼이 잘 되는 복'입니다.
이 '영혼이 잘 되는 복'이 있어야 건강의 복도 물질의 복도 진정한 복이 됩니다. 왜냐하면 영혼이 잘 되지 않은 상태에서 건강한 사람은 그 건강으로 죄짓는데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영혼이 잘 되지 않는 상태에서 물질이 많은 사람은 그 물질로 역시 죄짓는데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혼이 잘 되는 사람은 건강한 몸과 주어진 물질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사람들을 유익하게 합니다.

엽기적인 살인을 저질렀던 지존파를 아시지요? 이들은 건강의 복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영혼이 잘되는 복을 누리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있는 건강으로 사람을 죽이고 헤쳤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감옥에서 사랑의 교회 이재명 집사를 통해 복음을 받고 예수를 믿어 그들의 영혼이 소생하고 영혼이 회복되자 이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선한 일을 찾았습니다. 결국 그들은 건강한 몸밖에 드릴 것이 없음을 알고 사형 당하기 직전 그들의 건강한 장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다 기증하고 죽었습니다.

교회는 세상 사람들에게 영혼이 있음을 알리는 곳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영혼이 건강하게 살도록 가르치는 곳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들의 영혼이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됨을 가르치는 곳입니다. 즉 교회는 영혼이 잘되도록 하는 곳입니다.

그러나 이 지상의 모든 교회가 이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건강한 교회만이 이 역할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건강한 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건강한 교회의 특징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 가장 뚜렷한 것은 '전도하는 교회'라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전도는 영혼이 잘 되게 하기 위해 영혼부터 살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성경 본문 35절에 지금이 "희어져 추수하게 된 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추수는 영혼을 거두어들이는 영적 추수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죄 가운데 빠져 헛된 욕심을 가지고 살다가 죽을 영혼들을 빨리 구원해야하는 영적인 추수꾼들입니다.

그래서 지난주에 영적인 추수군들이 가져야할 몇 가지 자세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본문은 예수님이 사마리아 수가성의 한 여인을 우물가에서 만나 전도한 내용입니다. 이 여인은 그의 행실이 온전하지 못해 모든 사람이 더위를 피해 오침을 즐기는 시간에 우물가에 나오 나와 물을 긷는 여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사마리아로 가셨고 이 여인에게 다가가셨습니다.

1. 나는 전도도 못하고, 전도에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지 맙시다.
오늘 성경 본문에는 창녀와 같은 사람도 예수님을 만난 뒤 동네에 들어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전도왕 중에 처음부터 전도왕이었던 사람은 없었습니다.

2.'무엇으로 전도해야 하나?'하고 전도의 내용 때문에 고심하지 맙시다.
본문의 이 여인은 자신이 경험한 예수님을 동네 사람에게 솔직하게 말함으로 전도하였습니다.전도에 상당한 신학적 지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할 때부터 우리는 전도에 이미 실패한 사람이 됩니다. 전도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쉽게 생각하고 쉽게 전하고 권하십시오.
"1.예수 믿으십니까? 제가 믿어보니 너무 좋아서 그럽니다. 2.기도하고 있습니다."

3. 전도 대상자가 없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문제는 우리의 관심입니다.
교회 버스를 타고 야유회를 갔는데 같은 좌석에 앉은 집사님이 "목사님 이 짧은 거리에 낚시점이 열 개나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집사님은 낚시점을 경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낚시점을 본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지난 온 거리에 교회가 몇 개 있었는지는 분명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무슨 차이입니까? 관심의 차이입니다.

이 여인 역시 예수님을 만나 구원을 받은 뒤에는 이전에 부끄러워 눈을 피해 다녔던 사람들이 이제 모두 전도 대상자가 되었습니다.


오늘은 동일한 본문에서 지난주에 이어 몇 가지 더 생각하면서 이 시대에 전도에 대한 하나님 간절한 마음을 새기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4. 전도 대상자에 차별을 두지 맙시다.

1)주님은 창녀도 대상자로 삼으셨습니다.
우리는 전도할 때 대상자를 고를 때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전도하면 잘 들어줄까 어떤 사람이 순하게 반응할까?' 이렇게 한다면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자리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믿고 안 믿고를 다 판단해 버렸으니까요. 즉 구원을 허락하는 자가 바로 나 자신이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전도 대상자를 고른다는 말이 큰 죄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전도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사마리아 여인이었습니다. 거기에다 그녀는 창녀와도 같은 여인이었습니다. 27절에는 제자들이 돌아와서 이상히 여겼다고 했습니다. 왜 그렇게 했겠습니까??
정통 유대인들은 혈통적으로 이미 이방인의 피가 섞인 사마리아 사람을 개같이 여겼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여인은 자신 개인의 삶에 있었어도 떳떳할 수 없는 창기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여인을 전도 대상자로 삼으셨습니다. 그것도 우연히 만나 전도한 것이 아니고, 계획을 가지고 사마리아 땅을 방문하셔서 전도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복음에는 차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롬 10: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우리는 주위에서 도무지 안 믿을 것 같은 사람들이 믿고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가끔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기적이 따로 없다. 바로 당신을 보니 기적이다."
오늘 이 자리에도 이 말에 동의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적어도 10년 전에, 5년 전에는 아니 1년 전에만 해도 이 자리에 앉아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전도를 많이 하신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안 믿을 것 같은 사람이 복음을 더 잘 받아들이고, 핍박하고 고생해서 전도한 사람일수록 믿음이 빨리 자라는 것을 본다고 합니다.

2)낙심자도 포함시켜라
여러분의 전도 대상자에 믿다가 낙심한 사람을 포함시키십시오.
주위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이전에 신앙생활을 하다가 이런 저런 이유로 교회에 나오는 것을 그만 둔 사람들이 많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제 그들의 삶의 형편에도 세월이 지남에 따라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 중에는 누군가 인도만 해 주면 옛 신앙을 회복하고 다시 교회에 나올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5.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전도합시다.

4장 전반부에서 예수님과 여인의 대화를 지켜보면 자꾸 대화를 회피하는 여인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럴 때 낙심될 수 있습니다.

단번에 복음을 받고 교회에 나와 정상적인 신앙 생활을 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때로 전도는 밭을 경작하는 것과 같습니다. 성경에도 씨뿌리는 비유를 보면 4종류의 밭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의 전도는 그 횟수를 더해 갈수록 심령의 밭을 개간하는 것으로 믿으시면 됩니다.

우리가 전도를 하다가 주의해야할 것은 인간적인 생각입니다. 전도는 영적인 싸움인데 인간적으로 사람을 대하다 보면 실족하게 됩니다. 낙심할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어제까지 교회에 나오겠다고 약속한 사람이 오늘 아침에 전화를 해 보면 집에 없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한 번 교회에 나와주는 것으로 큰 유세를 떠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그 사람이 교회에 나왔을 때 우리의 마음은 또 얼마나 간절해집니까? '저 사람이 정말 은혜를 받아야 할 텐데'하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해 보면 그 한 사람이 교회에 나와 준다고 해서 돈이 나옵니까 아니면 직장에서 승진합니까? 인간적으로는 실망할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러나 낙심은 금물입니다.
전도를 많이 하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기준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러분이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한국 속담에 있는 것처럼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없다'라는 말을 가지고 열 번까지는 전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여리고 성이 7번 돌 때에 넘어진 것처럼 7번까지 찾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고구마전도법으로 하면 만날 때마다 "기도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한 통계에 한 사람이 전도 받고 교회에 나오기까지 16번의 사람과 접촉을 한다고 밝혔습니다.
결과는 주님께 맡기고 여러분은 그 16번 중 한 번을 내가 기여한다는 자세로 복음을 전하면 결과에 관계없이 실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6. 전도는 세상의 것으로 맛볼 수 없는 신령한 기쁨을 가져다 줍니다.

전도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매일, 그리고 지치지 않고 그렇게 전도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단지 사명감하나만으로 그렇게까지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입니까? 그 속에 즐거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1)이미 영적인 양식으로 충만한 예수님
오늘 본문 31-34절에 보면 여인이 동네에 들어 간 사이에 제자들이 먹을 양식을 구해 와서 예수님께 드렸습니다. 그런데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배고파서 지쳐 있었던 예수님이 이제는 새 힘이 나 있었습니다. 또 예수님은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이 동네로 들어간 사이 '누가 와서 먹을 것을 드렸는가'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34절에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저는 처음에 이 말씀을 이렇게 오해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스승이 아니신가? 예수님이 많이 시장하셨겠지만 그렇다고 제자들이 가져온 양식을 체통도 없이 덥썩 받아먹는다면 품위가 없는 일이지. 그러니 예수님이 점잖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 격에 더 어울릴 것 아닌가? - “너희들은 먹을 양식 때문에 헐떡거리고 있느냐, 쯧쯧 나는 너희들이 모르는 양식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다.” 이 얼마나 예수님답고 멋진 말씀인가? 그래 예수님이 먹는 것 하나 때문에 껄떡거리실 분이 아니지!

그런데 사실은 그런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너무나 기쁘거나 슬픈 일을 경험할 때 순간적으로 그 왕성하던 식욕이 갑자기 없어지는 것을 경험해본 일이 없습니까?

예수님은 지금 한 영혼이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순간을 너무나 기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기쁜 것은 그 일이 하나님이 자기를 보내신 뜻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기쁨은 예수님의 지치고 또 배고픈 것을 충분히 잊게 해 주었습니다. 도리어 더욱 새 힘이 넘치게 한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전도하여 주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면 세상이 알지 못하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 “나 주님의 기쁨되기 원하네 / 내 마음을 새롭게 하소서 / 새부대가 되게 하여 주사 / 주님의 뜻 행하게 하소서 / 내가 원하는 한 가지 / 주님의 기쁨이 되는 / 내가 원하는 한 가지 /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우리 나라에는 이런 기쁨을 낙으로 삼고 살아가는 헌신된 선교사들과 전도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나라 기독교 초창기에 우리에게 와서 복음을 전해 준 선교사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날 많은 젊은이들이 선교에 뜻을 두고 헌신하고 있습니다.

2)주인의 즐거움에 동참
36절에는 그 기쁨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거두는 자가 이미 삯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주인이 삯을 이미 지불하였다는 것은 할 일이 많고 그 일이 시급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수확하게 될 때의 주인의 기쁨은 수확을 기다려 온 만큼이나 클 것입니다.
오늘 본문 36절에는 거두는 자가 열매를 거두게 될 때 뿌린 자와 함께 즐거워하게 될 것이라 말합니다. 여기에서 거두는 자가 제자들이라고 한다면 뿌리는 자는 예수님입니다. 이제 우리는 거두러 나가는 것입니다. 다 익은 열매를 거두러 나가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거두러 나갈 때,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가 뿌린 자와 함께 즐거움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이 즐거움이 무엇이겠습니까? 이 즐거움은 바로 예수님이 육신의 배고픔을 잊을 정도의 기쁨이 될 것입니다. 세상의 것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즐거움일 것입니다. 이것은 복음을 전하여 거두러 나간 사람이 아니면 도무지 알 수 없는 기쁨일 것입니다.


7. 전도의 기회를 연기하거나 놓치지 맙시다.

오늘 본문을 35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이 말씀을 보면 그 당시 곡식을 추수할 때는 넉 달 후 인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 넉 달 안에도 죽어 지옥 갈 사람들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복음이 전달되어져야할 시급함을 가지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들녘의 논밭의 추수가 넉 달이 남았을지라도 영혼의 추수는 지금 바로 오늘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선교와 전도의 내일은 없다고 보아야 합니다.

예화1) 미국의 토리 존슨 목사가 시카고에서 오클라호마로 가기 위해 비행기를 탔습니다. 성령님께서 존슨 목사에게 지시하였습니다. 한 여 승무원에게 전도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존슨 목사는 주변 승객들의 시선을 무릅쓰고 그녀에게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을 했습니다. 그 여 승무원은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존슨 목사가 오클라호마에서 내리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서자 그 스튜어디스는 다가와서 눈물을 글썽이며 말을 했습니다.
“목사님, 이제는 제가 지금 죽어도 천국에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혹시, 제가 목사님을 이 세상에서 다시 뵙게되지 못하면 천국에서 뵐께요. 안녕히 가세요”

다음날이었습니다. 존슨 목사는 아침 식탁에서 조간 신문을 받아 보았습니다. 그런데 존슨 목사가 어제 오클라호마에서 내렸던 비행기가 다음 도착지로 가는 도중에 폭파되어 탑승객 전원이 사망한 기사가 실려 있었습니다. 혹 승무원이 교체되었는가 보니 사망자의 명단에는 어제 존슨 목사가 기내에서 전도했던 그 여승무원의 이름이 있었습니다.

예화2) 5공 시절 대통령의 경제 수석 비서관이었던 김재익 박사와 과학기술처 장관을 지낸 정근모 박사(장로)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둘도 없는 친구였습니다. 시간이 나지 않아 만나지 못했던 두 사람이 하루는 벼르고 벼르다가 조용히 만났습니다. 물론, 그 만남은 정근모 장로가 친구인 김재익 박사를 전도하기 위해서 만든 자리였습니다. 정근모 장로가 먼저 말을 꺼냈습니다.
“김 박사, 오늘은 내가 자네한테 정말로 중요한 이야기를 할려구 그래.”
그랬더니 김재익 박사가 이렇게 말을 합니다.
“응, 그래, 그런데 나 이번에 대통령을 모시고 동남아에 가기로 되어 있어.”
정근모 장로는 김재익 박사가 엉뚱한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전도에 대한 주제를 계속 주도하지 못하고 놓쳤습니다.
“그래, 나도 이번에 중국의 문이 열려서 가게 되었어... 그러면 자네는 동남아를 갔다오고 나는 중국을 다녀와서 다시 만나세.”

그러나 정근모 장로와 김재익 박사는 그것이 마지막 만남이 되었습니다. 김재익 박사는 대통령을 모시고 버어마(현재, 미얀마)를 갔다가 '아웅산 폭탄 테러'로 인하여 희생된 사람 가운데 한 명이 되었던 것입니다.
중국에서 그 소식을 들은 정근모 장로는 출국 전 김재익 박사를 만났을 때 전도하지 못했던 것에 대하여 지금까지도 가슴을 치며 통탄을 금하지 못합니다. 정근모 장로는 그때 급히 귀국을 하여 김재익 박사의 장례식에 참석을 해서 이렇게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혹시 예수님을 믿지 않고 천국에 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그 친구는 제게 너무나 좋은 친구였습니다."

어떤 어린아이가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엄마, 내일은 언제야?"
엄마가 말했습니다.
"오늘 자고 나면 내일이 되는 거야!"
하루 밤을 자고 난 뒤 아이가 엄마에게 또 물었습니다.
"엄마, 이젠 오늘이 내일이야?"
엄마가 말합니다. "아니야, 하루 밤을 지나야 내일이지"
...... 이 아이는 이렇게 생각을 하고 맙니다.
"내일이란 없는 거구나!"

이 아이에게서처럼 우리에게는 전도의 내일이라는 개념은 없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의 선교와 전도의 밭은 벌써 희어져 추수할 때가 된 것입니다. 저 밭의 영혼들은 영혼의 추수꾼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추수꾼의 사명을 깨닫고 기도하고 나가 전하기만 하면 주께로 돌아올 많은 영혼들이 있는 것입니다.

다음 주부터 6월 마지막 주까지 '10주-100명 단기집중전도' 기간으로 정하고 주님의 뜻을 구체적으로 실천해 보려고 합니다.

어느 누구도 이 사명에서 제외된 사람이 없음을 기억하고 구체적으로 우리의 시간을 드리고, 물질을 드리고 우리의 손과 발을 드리고 우리의 입술을 열면 전도하는 자에게 주시는 주님의 놀라운 은혜와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아 멘- (주후 2002.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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