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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예배

기도외에는 없습니다
  • 날짜 : 2006.11.12
  • 설교자 :
  • 본문 : 마가복음 9:14-29
성경본문 및 요약
제목> 기도 외에는 없습니다.
성경> 막9:14-29
찬송> 479, 482

●들어가면서 - 문제가 속의 세상
오늘 본문 바로 앞에 보면 예수님이 제자 세 명을 데리고 산에 올라가셔서 변형되신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사건을 보통 예수님의 모습이 산에서 변화되었다고 해서 ‘변화산 사건’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변한 모습은 이 땅에서 보시던 예수님의 모습이 아니라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모습이었습니다.
(막 9:3)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심히 희어졌더라"
함께 올라갔던 제자들은 황홀경에 빠졌습니다.
왜 이 사건이 생겼을까? 이것은 바로 천국의 일시적 임재입니다. 9:1에 예수님은 “여기에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절의 내용 다음에 바로 변화산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한 사건이 변화산 사건입니다.
그래서 그곳은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천국이었습니다. 천국에서는 오늘 우리가 찬양한 것처럼 주 예수 얼굴 영광이 해 같이 빛나는 것입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천국을 경험했다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연연하며 살지 않는 것을 보았습니다. 베드로 역시 그랬습니다. 그냥 그곳에서 영원히 살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자기도 모르게 말합니다. “주님 여기에 주를 위하여 초막을 지읍시다.”
그러나 곧 모든 상황은 종결되고 현실로 돌아옵니다.

그들이 변화산에서 내려오자 바로 그들 앞엔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많은 인생의 문제를 가진 자들이 예수님이 나타나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귀신들린 아들을 둔 아버지가 아들이 불쌍해서 도무지 볼 수가 없어 예수님께 찾아온 것입니다. 아버지의 말을 들어 보십시오.
“귀신이 어디서든지 저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하여 가는지라”(9:18)
이를 바라보는 아비의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문제가 가득한 세상입니다. 도무지 어찌 할 수 없는 일들이 가득합니다.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습니다. 심장이 끊어질 듯합니다. 포기하고 싶지만 포기가 안 됩니다. 그러면 죽으라는 말입니다. 죽는 것은 또 쉽습니까?
본디 세상은 문제가 있는 곳입니다. 죄가 세상에 들어왔을 때부터 이 문제는 시작되었습니다.

●능력이 없음이 문제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에서 문제라고 하는 것의 본질을 잘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은 본래 문제가 있는 곳입니다. 문제가 없다면 세상이 아닙니다. 그래서 문제가 없기를 바라지 마십시오. 우리에게 문제는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풀 수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학생들에게 시험이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시험을 볼 때에 문제를 풀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문제를 잘 푸는 학생은 시험 문제가 문제 거리가 아니라 오히려 즐거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의 문제는 문제가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문제를 풀 힘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오늘 등장인물들의 모습이 그렇습니다. 아들의 문제를 가지고 나온 아버지가 예수님이 안 계시니 제자들에게 찾아가서 부탁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제자들의 능력에 대해서도 들었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제자들은 예수님을 이름으로 전도하면서 능력을 나타낸 적이 있었습니다.(눅10:17) 그러나 이제 아버지의 말을 보십시오.
“내가 선생의 제자들에게 내어 쫓아 달라 하였으나 저희가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9:18b)
이 일로 서기관과 변론이 시작되었습니다.(14) 즉 서기관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을 비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미 예수님의 활동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는 문제가 되어 있었는데 제자들이 전혀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으니 서기관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을 비난하는 것입니다. 이전에 있었던 그 많은 소문, 그리고 실제 능력이 다 거짓이었다고 말했을 것입니다.
아들의 고통 앞에 무력한 아버지, 그 문제를 가지고 찾아 왔으나 해결할 능력이 없는 제자들. 이것으로 사람을 짓누르려는 서기관들. 이것이 세상입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이것 또한 우리의 상황이 아닙니까?
오늘날 우리는 능력 있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우리도 바로 그 아비처럼, 제자들처럼 무력한 것은 아닙니까? 혹 자신도 무력하면서 위로할 줄 모르고 그 사람을 비웃고 짓누르려는 서기관은 아닙니까?

우리가 진실 되게 예수 믿으면, 평소에는 사람들이 우리를 찾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비난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이들이 감당할 수 없는 인생의 짐을 가질 때 예수 믿는 사람에게 다가와서 요청을 합니다. 저는 이런 경우를 많이 경험했습니다. 저의 친구들이, 그리고 군대에 있을 때에도. 그렇다고 제가 그렇게 믿음이 좋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가장 힘들고 위험하다고 생각할 때에는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우리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 믿는 사람들의 능력을 좀 발휘하고 살고 싶은데 전혀 그런 능력이 나타나지 않고 있지 않습니까? 오히려 그들의 놀림감이 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요사이는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 없는 종교가 기독교가 되어 버렸습니다. 물론 저는 이에 극단적으로 왜곡된 시선이 있다고 생각하고 이것을 사단이 조정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핑계할 수 없습니다. 분명히 우리가 잘못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다운 능력 있는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이 우리를 보고 예수님의 능력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다른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도 해결하지 못해 전정긍긍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믿음의 문제
그러나 주님은 이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잘 아셨습니다.
이 문제는 다름 아닌 믿음의 문제였습니다. 능력의 문제이기 전에 믿음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귀신들린 아들을 둔 아버지가 답답해하면서 예수님께 도움을 청하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막 9:19)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예수님은 당장 믿음이 없는 세대를 탄식하셨습니다. 쉬운 성경에 이렇게 번역하였습니다.
(막 9:19)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이 믿음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어야 하느냐? 내가 너희를 얼마나 더 두고 보아야 하느냐? 그를 내게로 데리고 와라!"(쉬운 성경)
도대체 얼마를 더 기다려야 믿음을 볼 수 있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이 아비와 예수님의 대화 중에 우리는 믿음과 능력의 관계를 알 수 있습니다.
이 아비가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라고 말하니 예수님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23)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은 곧 능력이라는 말씀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문제는 해결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믿음이 그냥 믿음이 아니라 온전한 믿음, 절대적인 신뢰를 말합니다.(22-23)
※예수님과 아비와의 대화(21-24)

예수님이 이 아들을 고치시고 난 뒤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 묻습니다.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종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막 9:28)
종용히라는 말은 조용히입니다. 조용히 예수님께 나갔다는 말은 그들이 심각해졌다는 말입니다. 그들의 능력 없는 상태를 심각하게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그들은 사실 능력이 없다고 말하기 전에 믿음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믿음은 기도에서 시작한다.(29)
마태복음 17:14-21은 오늘 본문과 동일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곳에 보면 제자들의 질문에 주님의 답이 좀 다릅니다. 한 번 보십시다.
마17:19-20 “이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마태복음에서는 답이 무엇입니까? “믿음이 없는 연고”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누구의 기록인 정확한 기록입니까? 마태입니까 마가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정확하며 오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기도와 믿음을 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기록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의도에 따라 더 강조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을 적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마17:20 다음에 오는 말씀이 막9:29인 것입니다. 연결시켜 말하면 이렇습니다. 1)우리는 어찌하여 못합니까? 2)너희 믿음이 적어서 그렇다 3)그러므로 기도하라
이 말은 기도하면 믿음이 생기고 기도하면 능력도 생긴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믿음과 기도는 깊은 상관관계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를 하려고 해도 믿음이 있어야 기도하지?”하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말은 맞는 말 같지만 틀렸습니다. 기도라는 것은 이론이 아니고 실제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에 관해 아무리 많은 성구를 알고 암송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기도를 하지 않으면 기도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과 같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하면서 기도를 알게 되고, 기도를 하면서 나의 문제를 알게 되고,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기도하면서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 믿음의 기도는 문제 해결의 능력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28절에 우리의 상황을 두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에 대한 답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적용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는(나는) 어떻게 해서 그 문제를 능해 해결할 수 없었습니까?” 여기에 문제라는 말에 여러분의 모든 연약을 다 넣어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왜 시험을 이기지 못합니까? 우리 집에 왜 이렇습니까? 나는 왜 남편을 사랑하지 못합니까? 나는 왜 주일을 지키지 못합니까? 나는 왜 십일조를 하지 못합니까? 나는 왜 공부를 못합니까? 나는 왜? 나는 왜? 나는 왜?
우리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너 기도 했냐? 너 정말 진지하게 무릎부터 꿇어봤냐?

●세 이레 특새
우리 교회는 내일부터 ‘여호와의 행적찾기 세 이레(21일) 특별새벽기도회’를 하려고 합니다. ‘작정하고 기도할 때에 몇 일을 기도하는 것이 좋을까?’하고 생각하다가 성경에 다니엘이 했던 작정기도가 떠올랐습니다. 그가 세 이레 동안 기도하였습니다.(단10:2)
그래서 매번 2주 동안 하던 것을 세 이레, 3주 동안 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수문앞광장이라는 말을 고쳐 여호와의 행적찾기라는 말을 붙인 것은 시편46:8과 5절을 통하여 “와서 여호와의 행적을 보라 이른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라”는 말씀을 통하여 이 기간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신 행적을 찾아가면서 은혜를 받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첫째 주간, 둘째 주간, 셋째 주간, 매 주간마다 새로운 주제를 통하여 도전하려고 합니다. 매일의 말씀을 잊지 않고 하나님이 자신에게 보여주시는 행적을 놓치지 않고 기록 정리하도록 핸드북도 제공합니다.

저는 이번 특새를 통하여 교회에 부흥, 가정에는 결실을, 개인적으로는 간증이 넘치기를 소원합니다. 어느 한 사람도 제외되는 일 없이 이 축복 속에 있기를 소원합니다. 은혜를 받을 때 함께 받는 것이 쉽습니다. 여름에는 열을 조금만 가해도 금방 데워집니다. 그러나 추운 겨울은 같은 온도까지 높이려 해도 여름보다 훨씬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모두가 함께 은혜 받을 때 받으면 쉽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능력을 체험하고 삶에서의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을 실마리를 발견하고 해결해 나갈 때 같이 하는 것이 좋습니다.
자연스럽게 둘째 주간에는 특별 부흥집회가 연결됩니다.

특별히, 우리가 좀 더 준비된 마음으로 특새를 맞이하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먼저 우리의 헌신의 결단이 있으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세 가지를 헌신하는 것입니다.
첫째는, 시간 드림입니다.
둘째는, 물질 드림입니다.
셋째는, 생명 드림입니다.

이와 같은 것을 지켜 가면 하나님이 더욱 기쁘게 우리를 받으실 것입니다.

서로가 모두 세 이레, 21일을 성공하도록 격려하고 도웁시다.
(전 4:12)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구역별로 지회별로 서로 연결고리를 만들어 서로를 챙겨줍시다.
아침에 모닝 콜도하고, 서로 같이 새벽길을 밟기 운동도 합시다. 멀리서 오는 분들은 카풀을 통해 서로에 새벽에 빠지지 않도록 합시다. 지회별로 특송을 할 것입니다. 오늘 총회를 통해 새롭게 편성된 지회가 첫 발걸음을 특새 특송을 하는 것으로 출발합니다.

모두 이번 특별새벽기도회 기회를 구체적인 기도의 무릎을 통하여 믿음의 능력을 회복하는 기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 아 멘 -(주후 2006-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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