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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시겠다 할 때 드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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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및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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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쓰시겠다 할 때 드립시다.
성경> 막11:1-10
찬송> 356, 351장
●본 사건에 대한 설명
예수님은 지금 예루살렘 성을 향하여 올라가고 있습니다. 이 길은 마지막이 될 길이었습니다. 막10:33에 보면,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져 죽게 될 것을 아셨습니다. 그러나 그 길은 왕이 자기 왕국에 들어가는 것과 같은 걸음이었습니다. 이제까지 제자들과 함께 걸어서 오신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거의 1, 2km 앞에 두고 걸음을 중단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나귀를 타고 입성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왜 갑자기 나귀를 타시겠다고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왕의 행차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예수님은 단순한 한 사람으로, 또 몇몇 무리의 선생으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는 것이 아니라 왕의 자격으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는 것입니다. 그 누가 이 사실을 인정하든 말았든 간에, 예수님은 왕으로서의 의미를 분명히 드러내기를 원하셨습니다. 이렇게 되어야 할 것이 이미 구약 성경 슥9:9에 예언이 되어 있었는데 예수님은 이 성경 말씀의 성취를 또한 기억하고 계셨을 것입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슥9:9)
그래서 예수님은 벳바게라는 마을 근처에 오시자 제자 둘을 보내며 나귀를 데려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까지 없던 나귀가 어디서 갑자기 나온다는 말입니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3절입니다.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 사람도 타 보지 않은 나귀새끼의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너라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리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이 말을 듣고 간 두 제자는 실제로 나귀 새끼가 있는 것을 보았고, 풀어 데리고 가려할 때 예상대로 나귀의 주인이 "나귀를 왜 푸느냐"고 물었고, 그들은 예수님이 시킨 대로 "주께서 쓰시겠다"고 말하니 그냥 가져가게 내버려두더라는 것입니다.
●본 사건에 대한 해석
우리는 이 사건을 읽을 때 조금은 신기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마술을 부리는 듯한 느낌도 가집니다. 그래서 이 사건을 두고 성경학자들은 예수님의 전지전능성 곧 신성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러나 이 사건을 꼭 그렇게만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예수님이 이 벳바게 길을 처음 걸으시는 것은 아닙니다. 예루살렘을 올라가실 때는 이 길을 항상 지나셨을 것이고 이 길을 지나면서 예수님은 어느 한 지점에 메여 있는 나귀 새끼를 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보신 적이 있다고 그냥 가져 오면 됩니까? 우리는 예수님이 이 나귀 새끼를 가져오라고 하셨고 그 나귀 주인이 주께서 쓰시겠다고 하니 두말하지 않고 내어 준 것을 보면서 예수님과 이 나귀 주인은 전혀 모르는 사이가 아니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나귀의 주인에게 있어서 '주'가 누구를 지칭하는지, 즉 그에게 '주'란 누구를 말하는지가 분명하게 확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에게 '주'는 누구입니까? 예수님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예수님이 건너편 마을로 가면 매여 있는 나귀 새끼를 보게 될 것이라고 한 것과 또 '주가 쓰시겠다'고 말하고 가져오라고 한 것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주님에 대한 확실한 고백
이 사건을 정리하면서 우리는 이와 같은 교훈을 얻습니다.
먼저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대한 분명한 고백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나귀의 주인을 생각해 보아야합니다. 그는 '주'에 대한 고백이 분명하였습니다. 그 사람이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게 된 것이 언제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그는 예수님을 분명 주로 고백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의 기적을 보았을 수도 있고, 또 예수님이 인도하시는 집회에 참석했을 수도 있습니다. 요20:30-31에는 예수님이 행한 일 가운데 기록되지 않는 많은 사건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 많은 사건들 중에 이 사람이 주로 고백하게 되는 사건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것,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기본입니다. 우리의 정체가 여기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도 이 사실 때문입니다. 그것을 알고 앉아 계셔야합니다. 여러분이 지금 집에 밀려있는 빨래를 하지 않고 이 자리에 와 있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여러분이 집에서 늦잠을 자지 않고 이 휴일에도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여러분이 미루어 놓은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임에도 이 자리에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는 곧 나의 주!' 이 사실은 우리 자신이 대한민국 국민인 것만큼이나 분명해야 합니다. 사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할 때 이 내용이 함께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는 믿지만 예수는 나의 '주'는 아니다"라는 말은 말이 안됩니다.
오늘 본문의 상황에서 보면, 이 나귀 주인에게 제자들이 "주가 쓰시겠다"고 말을 하니 두말없이 나귀를 내어주었습니다. 그것은 그에게 있어 '주'가 누구인지 언제 어디서나 항상 분명하다는 말입니다. 주저함이 없다는 말입니다. 이 사실이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항상 이 고백이 분명한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부모님께 불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부모를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보다 더 큰 불효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이 그렇게 헌신된 삶이 아닐 수 있습니다. 오히려 여러 가지 문제가 많을 수 있습니다. 또 더러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실수를 하기도합니다. 나의 삶이 꽃처럼 향기나는 생활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이 나의 주라는 사실만큼은 분명해야 합니다.
근간에 와서 우리가 자주 부르는 찬송 "주 예수 나의 당신이여"입니다.
♬ "주 예수 나의 당신이여" -이인숙-
1. 빛이 없어도 환하게 다가오시는 주 예수 나의 당신이여
음성이 없어도 똑똑히 들려주시는 주 예수 나의 당신이여
2. 나는 있어도 당신이 곁에 없으면 나는 언제나 없습니다
나는 없어도 당신 곁에 계시면 나는 언제나 있습니다.
(후렴) 당신이 계심으로 나는 있고 당신의 노래가 머물므로 나는 부를 수 있어요
주여 꽃처럼 향기 나는 나의 생활이 아니어도
나는 당신이 좋을 수밖에 없어요 주 예수 나의 당신이여
●주님의 필요를 위해 예비 된 사람
둘째로, 주님의 필요를 위해 예비 된 사람이 되자는 것입니다.
이 나귀 주인은 예수님이 하시고자 계획한 일에 요긴하게 쓰임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기 위해 그는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아무나 쓰임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은 준비된 사람을 쓰십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귀 주인이 나귀를 왜 키웠을까?' '그것은 주님이 필요할 때 드리기 위해서이다.' 이런 주장이 억측, 억지 추측입니까?
본문의 전개 상황을 좀 더 현실감을 가지고 읽어보십시오. 나귀 주인은 주가 쓰시겠다고 할 때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 선뜻 내어주었습니다.
나귀 주인은 주님이 필요로 할 때를 예비하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이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성도 여러분, 이 일이 귀한 것임을 믿습니까? 내 것이 없어졌는데 무엇이 귀하단 말인가?하고 생각하시는 분은 없습니까? 그러나 우리의 가지고 있는 것이 주님을 위해 쓰여졌다고 한다면 그것은 정말 귀한 일입니다.
유명한 가수가 공연을 하다가 땀이 나서 딱으려 하는데 자기의 손수건을 꺼내서 딱는 법이 없습니다. 왜냐? 수많은 관객이 자기 손수건을 사용해 달라고 애원을 하기 때문입니다.
예)나훈아씨 리싸이틀
세상의 대중가수 한 사람에게서도 사람들이 자기의 것을 써 달라고 애원을 합니다. 우리의 것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주님에게 드려졌고 주님이 쓰시는 것은 영광 중에 영광입니다.
또 이 나귀의 주인은 가장 필요할 때 주님께 드린 사람입니다.
어떤 일을 하면서 난관에 부딪쳤습니다. 그런데 그 일을 적절하게 해결할 사람을 만났습니다. 얼마나 기쁜지 아십니까?
필리핀에 가서 야자수 액을 정말 맛있게 먹은 일이 있습니다. 누가 야자수 열매를 주며 물 대신 먹으면 된다고 말하길래 그런 줄 알고 물도 챙기지 않고 바쁘게 차를 탔습니다. 찜통같은 차를 타고 장거리를 달리는데 물이 없습니다. 아쟈 열매가 있지만 껍질이 얼마나 딱딱한지 과도를 가지고는 깍을 수도, 자를 수도 없었습니다. 모두가 야자 열매만 들고 땀을 팥죽같이 흘리며 목말라하는데 한 사람이 이것 가지고 해 보라고 하면서 도구를 하나 줍니다. 맥가이버 칼이라고 하면서 주는데 많은 도구가 달려 있습니다. 그 중에 드릴 같은 것이 있어 열매에 꽂고 힘을 주어 돌리니 나중에는 구멍이 났습니다. 빨대를 꽂아 정말 맛있게 먹은 기억이 있습니다. 그것을 준 사람이 얼마나 고맙든지요?
우리가 해외여행을 갔는데 도무지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고생입니다. 여행도 잘 먹고 잘 쉬며 해야 진짜 여행이지 먹지 못하고 하는 여행은 정말 생고생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외국 음식이 맞지않아 고생하고 있는데 일행 중에 고추장을 내밀면서 한 숟가락 떠가라고 말해 보십시오. 얼마나 고마운지요? 그때는 고마워 눈물이 핑 돕니다.
우리 주님이 지금 자신의 도성인 예루살렘 성에 왕으로 입성하시려는데 왕의 행차에 그냥 터벅터벅 걸어갈 수는 없고 나귀가 필요합니다. 이미 스가랴서에는 어린 나귀 새끼를 타고 가겠다고 예언까지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는 나귀가 없습니다. 그 때 주님이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 사람이 바로 벳바게에 사는 한 이름 모르는 성도였습니다.
주님에게 있어 이 사람은 주님의 공생애 사역 중 분명 잊을 수 없는 한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을 위해 복되고 아름답게 예비되는 사람이 되십시오. 주님이 필요로 할 때 귀하게 쓰임을 받는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하고 물으시면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대답하는 여러분이 되십시오.
●소중한 것으로 드리자
셋째로 나에게 소중한 것으로 드립시다.
이 나귀의 주인이 예수님께 바쳐 드린 것은 성경에 "아무 사람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 말은 의도적으로 그 나귀에 다른 사람이 타는 것을 막았다는 의미입니다. 왜 그렇게 했겠습니까? 이미 말씀 드린 대로 이 사람은 이 나귀를 주님을 위해 준비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타실 것에 다른 어떤 사람도 먼저 타면 안 된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렇게 소중하게 이 나귀를 예비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주님에게 드리는 것들도 귀한 것을 정성스럽게 바쳐야합니다. 우리가 '쓰고 남은 것이 있으면' 드리는 것이 아니라 쓰기 전에 먼저 구별하여 드리는 것이 옳은 자세입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주님이 우리를 대하는 것이 달라질 것입니다.
예)1. 주일 복장 - 주일에 제일 좋은 옷을 입고 가장 단정하게, 정장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서구의 사람들에게 배울 것. 그들은 다른 어떤 곳보다도 예배드리러 갈 때에 어린아이들로부터 노인에게 이르기까지 정장을 한다.
다른 모임에 갈 때에는 하루 전날부터 무슨 옷을 입고 갈까 고민하면서 주일이면 아무 옷이나 입고 오시는 분이 있으면 안됩니다. 토요일이면 주일 하나님 앞에 갈 것인데 무슨 옷을 입을까 고민하시는 여러분이 되십시오. 아이들에게도 좋은 옷을 입히십시오. 그것이 교육입니다. 기타 공예배시에 슬리퍼를 끌고 오는 사람
2. 성미 - 하루 하루 정성을 담아서 가져오십시오.
3. 헌금할 돈 - 헌금할 돈을 다리미에 다리는 것.
4. 예배를 위한 준비 - 토요일에 준비. 주일 저녁을 위한 준비.
성도 여러분, 나에게 귀한 것을 나를 위해 움켜지면 나를 기쁘게 하는 것으로 마치지만 주님을 위해 내어드리면 나와 내 주위의 사람과 주님까지 기뻐하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런 여러분의 행위는 주님의 기념책에 기록될 것입니다.
예)오병이어를 드린 소년
●주님의 사역에 동참하는 자
마지막 넷째로, 주님의 사업에 동참하는 자들이 됩시다.
나귀의 주인은 자신이 드린 나귀가 예수님께 그렇게까지 긴요하게 사용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것을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는 일에, 그리고 구속사역의 아주 중요한 일에 사용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이 제공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을 입성하셨고 제자들은 그 나귀가 가는 길에 겉옷을 펼치며 예수님 뒤를 따랐습니다. 길가에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 "호산나, 호산나" 외쳤습니다. 이 예식으로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왕이었음을 증명한 것입니다.
나귀가 없었다면 얼마나 초라한 행차가 될 뻔했는지 모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주님을 위해 드리면 우리도 자신도 생각할 수 없었던 일이 일어나는 것을 믿으십시오. 그때가 언제인지 모릅니다.
●쓰시겠다 할 때 드립시다.
더 이상 우리의 드려야 할 때를 미루지 맙시다.
우리는 지금 교회를 위해 헌신할 사람들을 찾고 있습니다. 교회는 주님의 몸입니다. 교회를 위한 일은 주님을 위한 일입니다. 주님과 교회는 하나입니다. 주님이 여러분을 향해 '내가 너를 좀 써야겠다'고 말씀하실 때 여러분의 시간을, 물질을, 여러분 자신을 드리시길 바랍니다.
저는 우리 교회를 위해 지금의 여러분이 쓰임을 받기를 원합니다. 금요기도회 시간에도 말씀드렸습니다. 우리 교회는 부흥합니다. 믿으십시오! 그런데 부흥의 시기에는 하나님이 사람들을 일으키셨습니다.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심어 주시고 하나님의 비전을 자신의 비전으로 삼고 살게 하셨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를 위한 그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바로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나귀를 정성스레 준비하고 또 때가 되어 바치는 분들이 되시라는 말입니다. 마리아처럼 향유 옥합을 잘 준비하였다가 기회가 주어졌을 때 놓치지 말고 깨드리는 여러분이 되시라는 말입니다. 오병이어를 드린 어린 소년처럼 자기를 희생하고 드리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안 하면 결국 다른 사람이 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손해보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이 안 하면, 다른 사람 불러 시킵니다. 우리교회가 안 하면 다른 교회 사용하십니다. 그러나 그때 우리는 '왜 내가 그 복을 걷어찼는가'하고 원통해 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22장에 왕이 혼인잔치를 열고 사람들을 초청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초청한 사람들이 한 사람도 안 왔습니다. 그래서 종들을 시켜 다른 길거리에 나가 다른 사람을 초청하여 채웠다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헌신의 자리가 비어있으면 주님은 다른 사람으로 채울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다른 사람이 이 교회에 들어와 열심을 내고 선두에 서서 헌신하는 것을 보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이 여러분의 자리에서 먼저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지금 현재를 살면서 역사적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은둔한 곳에서 이제 나오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적극적인 신앙생활의 현장으로 나오십시오. 이방인과 객과 같은 모습을 벗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자신을 기쁘게 주님게 드려 주님의 기쁨이 되십시오. 주님이 기뻐하시면 교회가 복됩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면 성도가 복됩니다. 그의 가정이 복됩니다.
기쁘게 드려 즐거이 헌신하고 주님이 허락하신 은혜와 복 가운데 사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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